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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2살 먹은 아줌마입니다. 저는 영어를 글로만 배웠지 입으로는 안나오는 영어 무지랭이 입니다. 그런 제가 내 아이를 위해 필리핀에서 1년 살기를 한 이야기를 적을까 합니다.

 

제작년 둘째아이 2학년어렸을때 부터 천식을 앓았습니다. 그로 인해 아이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 아이를 지켜 보면서 저 뿐 아니라 남편까지 힘 들었습니다. 2학년 여름 방학이 거의 끝나갈 때쯤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천식이 심해짐을 느꼈습니다. 원래는 감기를 앓을 때만 천식이 올라 왔는데 이번에는 감기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올라 오더라구요. 얼마나 심 했던지 천식 환자가 쓰는 벤톨린에 호흡기에 다 써 봐두 집에서는 손 쓸 수 없을 정도록 심해져 아이는 숨이 끈어질 정도를 반복하며 구급차를 24시간동안 3번이나 부르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대학병원 절대 입원 안해줌) 정말 아이의 숨은 바로 넘어 갈거 같고, 해줄 수 있는건 없고, 정말 지켜만 보는 그 심정을 무엇과도 표현할 수 없는 지옥같은 날 이었습니다. 충남에 있는 대학 병원에서 이것 저것 다 해보고 안 된다고 서울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구요..

 

그 날은 추석 앞으로 2틀이 남은 날 이었습니다. 딱 봐두 막힐 것을 예감하고 ,구급차를 부르려 했으나, 금액이 20만원 나오더라구요 공짜인줄 알았던 구급차는 먼곳으로 갈때는 돈을 받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남편은 가격을 보더니 너무 비싸고 터무니 없다고 아이랑 본인 차를 끌고 서울 병원으로 가겠다고 버텄고, 저는 소리 소리 지르며, 길이 막히니 그냥 돈이 들어도 구급차를 타자고 하고 구급차를 억지로 태워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중간에 아이가 천식이 발생 할 경우에는 도로 한가운데서 응급처리를 해야 하고, 지금 서울 병원까지 가는 이유는 천식이 조절이 안돼서 가는건데 남편이란 작자는 참 답이 없는 존재란 생각을 했고 그때가 남편에게 있어 가장 섭섭했습니다.

 

저는 몇날 며칠을 밤을 새서 정신이 없는 상태로 남편의 저지에 집에서 쉬며, 내일을 기약했고 또 큰아이가 있어 같이 갈 수 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눈에 안보이니 얼마나 더 불안한지 집으로 갔지만 잠을 잘 수 없어 또다시 세벽 두 시에 차를 끓고 서울 병원으로 갔습니다. 가보는 남편은 저에게 구급차를 태워줘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왜냐고 물어보니 그날 서울 가는 도로는 꽉 막혀 있었고, 움직이지 않아 가도 오도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의 친절하고 도덕적인 시민 정신 덕에 오로지 움직 일수 있는건 구급차였다고 하더라구요. 남편은 구급차에서 기적을봤다 했고,그 순간 순간 구급차를 피해주는 차량에 감사를 표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순간 지금도 알 수없는 분들에게 나 또한 너무 감사하고, 그 이후 우리 남편은 차선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더 인자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서울 병원 에서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온갖 검사를 다하고, 입원 시켜 달라고 땡깡을 부렸지만 특별한 증상이 안보여 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 뿐 이었습니다. 한 10흘정도 지나고 아이가 좀 좋아질 때쯤 전 이런 환경에 살다가는 내 아이가 더 위험 할 것을 직감하고 필리핀으로 떠나자고 작정을하고 준비 했습니다. 일단은 필리핀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은 바콜로드라는 섬으로 남편 없이 두 아이를 데리고 몇 개월 후 무작정 떠났습니다. 비행기를 두번이나 갈아 타서 한국집 에서 바콜로드 가는 시간은 무려 14시간 정말 너무 힘든 여정 이었습니다. 막상 가면 좋을것 같았는데 적응 못하고 1달 여만에 다시 한국으로 와서 아이가 한국에 또 안 좋아짐을 느끼고, 다시 살기 좋다는 세부로 다시 출발 했습니다. 바콜로드 에서도 느꼈지만 공기가 좋아서 인지 아이가 좋아 지는것을 느꼈고, 세부 역시 도로와 시티 빼고는 다 공기가 좋아 그런대로 살만했습니다. 어학원을 2개여월 다닌 후 사립 학교로 아이들을 보냈습니다. 한국 학교는 천식이 발병한 이후에 내가 직접 따라 다니면서 한 두시간 수업만 하면서 그렇게 3학년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너무 놀라 웠던건 그날 공기 수치가 300이 넘는 안 좋은 날씨 임에도 불구하구 온 집안에서는 공기청정기에 문을 닫는 입장인데 오로지 학교 에서만은 아이들이 뛰어서 먼지가 난다는 이유 만으로 하루종일 아침 부터 문을 열고 있는 것에 충격적 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몸으로 느낄 수 는 없지만 나 같은 자식을 둔 부모는 아이에게 직격탄이 되기 때문에 정말 이때 한국 에서는 학교를 보낼 수 없다는 판단을 했던거 같습니다. 하루 빨리 지금보다 더 미세먼지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할 텐데 참 안타까운 현실 이었습니다.   

 

 

아는 어학원에서 2개월간 학원을 보내면서 아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지인을 이용해 1년 살 집을 계약을 했고, 집에 일할 사람을 구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 온 이후 학교 공부를 못 따라 가기에 튜터도 구하고 참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아이들을 학교 보내면 한국보다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필리핀 학교 수업은 아침 7시 반에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끝이나는 일정 입니다. 첫 아이는 너무 적응을 잘 했고, 둘째 아이는 징징 대면서도 적응을 잘했고 더 좋은건 한국서 앓던 천식 비염 눈 충열은.. 이 아이가 아팠었던 애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필리핀은 병원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약을 한 보따리 싸 갔지만, 정말 1년이 되는 시점 에서도 풀어 보지도 않고 그 약을 한국으로 다시 싸왔습니다. 정말 천식은 공기랑 정말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돌아 왔습니다. 필리핀의 새 학기가 시작하는 6월이 지나고 어느덧 3개월이 된 9월이 되어 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 그냥 낙제만 받지말고 그냥 학교 다니는데 의미를 둬라고 했지만 첫째는 정말 현지인 처럼 말도 잘하고 시험에 12과목 평균 90점을 맞아 왔고, 둘째는 9과목 평균을 83점을 받아 올 정도로 영어 실력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똑똑 하냐구요? 아닙니다 적응력이좋고 또 튜터라고 학교 끝나고 오후 5시 부터 9시까지 각각 두 시간씩 학교 수업으로 과외를 시켰습니다. 힘들어 하면서 필리핀에서 접하는 영어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면서 정말 빨리 배워 나가 더라구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저희는 일요일은 교회를 가고 또 남는 시간에 호텔 수영장을 정기권을 끈어 놓고 다녔고 또 에메랄드인 바닷가에 스노우쿨링과 낚시를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건강 땜 에 온건데 건강은 언제 아팠냐 하듯이 신경도 안쓰고 학교 다니고, 공부하고, 노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필리핀은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곳 입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착하고 한국인에게 무척 친절하고 존중 해 주고, 깨끗한 바닷가가 있어 마음만 먹으며 놀러다닐 수 있고, 환경이 너무 깨끗해서 한국에서 하루살이 마냥 내일은 공기가 좋으려나 어쩌냐 하는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탄은 다음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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